영험한 기운 가득한 숲,
성황림
왜 떠나고 싶은가. 때로는 너무 꽉 찬 일상에 지쳐서, 때로는 또다른 욕구들이 내 안에서 충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마음의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곳, 영험한 기운으로 알려진 곳을 찾아 떠나는 건 어떨까. 원주에는 신령한 숲이라 불리는 성황림이 있다. 세속과 거리가 먼 그곳에서라면 어쩐지 평안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불안하거나 고민이 많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까. 누군가는 친구와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누군가는 멀리 여행을 떠나 머리를 식히기도 한다. 요즘 MZ세대 사이에서는 사주와 타로를 통해 불안감을 해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요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곳에는 한 집 건너 한 집은 타로나 사주를 보는 곳이 자리하고 있다. 인생네컷만큼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호기심에 들어가보기도 하고, 맛집 순례하듯 돌아다니는 이들도 있다. 재미 반 진심 반이라고 해야 할까. 맞으면 좋지만 틀려도 그만이다. 순간의 즐거움과 잠깐 수다 떨 소재만으로도 투자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가끔은 운에라도 기대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어딘가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털어 놓으면 묵은 체증이 쑥 내려 갈 것도 같다. 문득 생각난 곳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타로도 사주도 인생네컷도 없지만, 신들의 땅으로.
원주 신림(神林)면, 신령한 숲이라는 마을 이름처럼 이곳에는 치악산 성황신을 모신 성황림(城隍林)이 있다. 성황림은 마을 사람들이 대대로 모셔온 신성한 숲으로 재앙을 막고, 길한 것들을 품으려는 기도가 이어지는 곳이다.
지금도 지름 1.8m, 높이 35m의 전나무가 신목(神木)으로 숲을 지키고 있다. 해마다 음력 4월과 9월이 되면 성황림 성황당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성황제를 지낸다.
성황림은 그동안 성황제가 열릴 때를 제외하고는 출입을 금했다. 덕분에 숲은 원림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해 왔지만, 마을 사람들은 2020년부터 숲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제한적이지만 숲을 개방했다.
성황림으로 발을 내딛자 맑고 서늘한 공기에 감싸인다. 낙엽활엽수 50여 종이 빽빽하게 들어선 성황림은 한반도 중부지방 온대림의 고유한 특성을 간직해 온갖 식물의 표본을 늘어 놓은 듯 다채로운 식생을 품고 있다. 마을숲 중 유일하게 천연기념물(제93호)로 지정되었다.
성황당 주변은 온통 영묘한 기운에 휩싸인 채다. 성황당(城隍堂) 양쪽으로 여서낭 엄나무와 남서낭 전나무가 우뚝 서 있다. 나무 몇 그루에 쳐 놓은 금줄엔 소원을 적은 한지를 내걸었다. 숲을 찾은 이방인에게도 소원지가 주어졌다. 그래, 바로 이 때문에 오고자 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펜을 들지만 소망 한 줄 적기가 왠지 어렵다.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레 적어 넣은 건, 처음과 다르지만 어쩐지 후련하다. 이렇게 모인 소원지는 매년 두 차례 열리는 성황제 때 금줄을 교체한 뒤 촛불로 불태운다.
숱한 소원을 머금어 더욱 신성한 숲, 신들의 숲으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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