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 놓고 다독이고,
호젓한 사찰 여행
영험한 기운을 품고 있는 까닭인지 치악산은 골골이 밴 이야기도 많고, 그 골짜기마다 유서깊은 사찰들이 자리잡고 있다.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찰들이 일상을 떠나온 여행자에게 모든 걸 내려 놓고 가볍게 돌아가라는 듯 너른 품을 내어준다. 치악산에는 한때 76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사찰들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지금은 몇몇 사찰이 남아 찾는 이들을 고요이 품어주고 있다. 고즈넉한 명상과 비움을 체험할 수 있는 원주 사찰을 찾아 본다.
치악산 구룡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황장금표와 금송길이 펼쳐지는 탐방로가 이어진다. 원통문과 사리를 모신 부도를 지나 1㎞ 남짓 숲길을 걷다 보면 구룡사에 도착한다. 걷기도 평탄하고 길도 아름다워 구룡사까지 걷는 동안 절로 힐링이 되는 듯하다.
구룡사(龜龍寺)는 서기 668년(신라 문무왕 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아홉 마리의 용을 물리치고 사찰을 지어 구룡사(九龍寺)라 했다. 조선 중기 이후 절이 쇠퇴하자 입구에 위치한 거대한 거북바위의 혈을 끊었다고 한다. 이후 더욱 쇠퇴하기만 하는 절을 되살릴 방법으로 ‘거북 구(龜)’ 자를 넣어 구룡사(龜龍寺)가 되었다고 한다. 근엄한 표정의 사천왕문을 지나면 유서 깊은 고찰의 분위기에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든다. 아름답고 화려한 보광루의 웅장함과 세월이 느껴지는 대웅전까지 눈에 담아 본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사찰 내 건물들은 대부분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뒤로 보이는 치악산 풍경이 어우러져 사뭇 다른 세상으로 들어선듯하다.
원주 제1경으로 꼽히는 수려한 풍광을 좀 더 누리고 싶다면 템플스테이를 선택하는 것도 좋겠다. 오랜 역사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공간에 머물며 천천히 시간의 결을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하나쯤은 내려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치악산 둘레길 1코스와 11코스는 천년고찰 국형사를 지난다. 원주 시민들과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사찰이다. 국형사는 송림 속 사찰이라고도 불릴만큼 사찰 주위에 울창한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신라 경순왕 대에 무착대사에 의해 창건되어 고문암(古文庵)이라 불렸다. 조선 2대 정종의 둘째 공주인 희희공주가 폐병에 걸려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가 약수터의 물을 마신 뒤 병이 낫자 정종이 절을 확장하고 국형사(國亨寺)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국형사 인근에는 조선 태조가 동악신(東岳神)을 봉안하고 인근 고을 원들이 제향을 올려 국태민안을 빌었던 제단인 동악단도 있다. 나라의 제사를 지냈던 동악단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봄 가을 두 차례 제사를 올린다.
사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국형사에는 그 무엇보다 장대한 것이 있다. 바로 국형사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땅, 산과 숲 등 자연 풍광은 절로 감탄과 경외감을 자아낸다. 이런 풍경 때문일까. 사찰 바로 아래 현대적인 수피다 카페가 있다. 국형사를 찾는 이들도 치악산에 오르는 등산객들도 풍경을 감상하며 힐링하고 싶은 이들도 모두 모이는 곳이다.
힐링이 필요하다면, 국형사를 찾아 마음을 다독이는 진한 솔향과 은은한 차향까지 만끽해보자.
원주를 대표하는 사찰 중에서도 독특한 볼 거리를 찾는다면 관음사를 방문해보자. 차로도 갈 수 있지만 치악산 둘레길 1코스 꽃밭머리길을 걸어서 가도 좋다. 사찰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연꽃 위에 높이 올라 선 석조여래입상이 보인다.
치악산 관음사는 1971년에 창건된 사찰로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 속에 세계에서 가장 큰 ‘108대(大)염주’를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명성이 높다. 재일 한국인 3세인 임종구 씨가 조국의 평화통일 염원을 담아 2000년 5월에 세 벌의 거대한 통일대염주를 만들었다. 통일대염주는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나무로 알려진 수령 2천 년의 아프리카 부빙가(Bubinga) 원목을 깎아 만든 것으로, 한 벌의 무게가 7.4톤에 이른다.
완성된 염주 세 벌중 한 벌은 일본 화기산의 통국사에 있으며, 관음사에 있는 한 벌과 묘향산의 보현사에 봉안될 예정인 한 벌도 이곳에 보관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염주에 담긴 통일의 염원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신라때 창건된 상원사는 치악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은혜 갚은 꿩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해발 1,182m의 치악산 남대봉 중턱에 자리한 작은 사찰이지만 원주 제3경으로 꼽힐만큼 장대한 산 능선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설과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스님이 지었다는 설이 있다. 몇 차례의 소실과 재건을 거쳐 1988년에 현재의 위치에 중창하였다. 100여 평 대지 위에 대웅전과 심우당, 심검당, 범종각, 산신각 등 가람과 자연 지형에 맞게 세워져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나란히 쌍탑이 있고 절 앞 바위 틈에서는 시원한 샘물이 솟아오르며, 그 앞 벼랑 끝에는 희귀한 계수나무 3그루가 서 있어 고산사찰의 운치를 더해준다.
고즈넉한 분위기와 산능선이 장대한 풍광을 감상하다보면,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자연의 일부가 된 듯 하다. 붉게 번져가는 노을빛과 함께 산 전체로 퍼져가는 종소리가 보은의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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