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대가 어우러진 프로젝트_11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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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제조 공장에서 문화 생산 공장으로 _  111CM

111CM을 담고 있는 대유평공원의 드넓은 대지

조선시대(1932-1910) 수원 화성(華城) 건설 사업과 함께 조성되었다. 수원 화성 건설은 조선 18대 왕 정조(1752-1800)가 1794년부터 1796년까지 추진했던 국가적인 차원의 대규모 공사로, 건설에 투입된 기술자만 해도 11만 명이 넘었다. 하지만, 공사가 시작된 그 해 가을 전국적으로 극심한 흉년이 들자 정조는 공사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대신 장안문 북쪽 넓은 황무지를 농경지로 개간하는 공사를 추진하도록 명을 내린다. 백성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때 조성된 농경지가 바로 대유평이다.

대유평은 일종의 국영 농장으로 관청이 지주가 되고, 백성들이 경작을 하는 형식으로 경영되었다. 관청은 백성에게 종자와 소를 빌려주고 수확량의 절반을 지대(地代)로 받았는데, 관청으로 들어온 지대는 수원 화성 건설에 사용되었다. 수원 화성과 함께 탄생한 대유평은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훗날 정조가 추진하는 농업정책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조선 후기 농업 개혁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대유평은 한국의 근대화와 함께 새로운 용도로 국가 산업에 기여하게 된다.

1969년 한국담배인삼공사가 이곳에 담배를 생산하는 연초제조창을 짓기 시작

1971년부터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 1500명의 노동자가 종사하며 연간 1,100억 개비의 담배를 생산하던 이 공장은 수원 지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재정에도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담배 생산라인이 자동화 됨에 따라 연초제조창의 기능은 크게 축소되었으며, 연이어 담배 산업이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결국 공장 가동 30여 년 만인 2003년 공장은 완전히 멈추게 된다. 그리고 이후 폐쇄된 공장과 주변 부지는 20년 가까이 그대로 방치되었다.

공장이 멈추어섰던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주변

이후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고, 주민들은 흉물로 전락한 연초제조창 건물과 대유평 부지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과거 연초제조창과 대유평 부지를 시민들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수원시는 기존 건물의 일부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연초제조창이 지닌 근대 산업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보존키로 했다.

이에 더해 시민들이 언제든지 자연을 찾아 휴식을 누릴 수 있도록 건물 주변의 대유평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러한 도시재생 계획에 따라 과거 연초제조창은 복합문화공간인 111CM(ComMunity)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방치되었던 주변 부지는 도심 속 자연 녹지 공간인 대유평공원으로 생명을 얻게 되었다.

220여 년전 백성들을 위해 황무지를 개간하여 조성된 대유평.

그리고 그 위에 세워져 수원의 근대 산업을 이끌었던 연초제조창. 도시 재생의 손길이 더해진 이곳은 이제 지역 주민들과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삶의 휴식과 에너지 충전소 역할을 하며 그 속에 내재된 대유평 본연의 가치를 아낌없이 발산하고 있다.

TIP: 111CM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수원화성은 건축미와 축성기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주소: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성로 195
전화: 031-269-3760-4
교통정보: 지하철 1호선 화서역 1번 출구에서 도보 20분
운영시간: 10:00~18:00(월요일, 공휴일 휴관)

주변관광지

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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