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마술사 불의 연금술사, 김시영이 꿈꾸는 영원의 BLACK
고려 시대 이후 맥이 끊긴 흑자를 계승 복원한 도예가 김시영. 1,300도 고온을 이겨내고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후 탄생한 작품은 그만의 독특한 색감과 작품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모든 색을 품고 있어 스펙트럼이 넓은 흑자는 사뭇 무지갯빛을 닮았다. 불과 흙의 연금술사 김시영, 그가 안내하는 흑자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모든 컬러를 품고 있는 흑색
우리나라 도자기는 청자와 백자만 있는 줄 알았다. 낯선 흑자(黑磁)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고려 시대 이후 맥이 끊겼던 흑자(흑유자기)를 계승 복원한 도예가 김시영이 도자기의 컬러 스펙트럼을 뒤흔든 주인공이다.
“고려 시대만 해도 흑자를 청자보다 더 귀하게 여겼지만 조선 시대에 맥이 끊긴 전통도자기입니다. 지금도 일본과 중국에서는 유명 도자기 중 상당수가 흑자입니다.”
그가 흑자 복원을 시작하게 된 것은, 대학 산악부 시절 태백산맥 종주 중 화전민터에서 흑자 파편을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우연히 마주한 흑자는 금속공학과 전공이었던 그를 도예가의 길로 이끌었다. 이틀에 한 번씩 가마에 불을 지펴 흙과 불의 세기를 연구하며 흑색 재현에 매진한 지 10여 년, 결국 전통적인 흑색과 적갈색이 나는 흑자를 재현해 냈다.
“철분이 든 약토(유약)를 발라 굽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빛깔이 나옵니다. 흑자지만 여러 가지 컬러로 보이는 건, 검은색 안에는 여러 가지 컬러가 들어있기 때문이죠.”
그만의 독특한 빛깔과 무늬를 담은 깊고 오묘한 검은 빛의 흑자는 붉기도 하고 푸른색으로도 보인다. ‘김시영 블루’로도 불리는 흑색은 ‘검다’가 아니라 ‘색이 다양하다’로 읽어야 한다. 흑자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영원을 담는 흙과 불의 예술가
도자기에서 흙은 매우 중요하다. 김시영 도예가 역시 몇 개월씩 흙을 연구하고 실험도 숱하게 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 가져온 흙도 실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어느 흙이든 흑자가 될 수 있다는 것. 바로 내 옆에보물이 있다는 깨달음 덕분이다.
“흙보다도 중요한 건 불입니다. 흑자는 1,300℃가 넘는 고온에서 캔버스 대신 흙으로, 물감 대신 불로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그러니 흑자의 칠 할은 불이라고 할 수 있죠.”
흑자는 청자나 백자보다 고온에서 구워내며, 가마에서 얼마나 불에 노출시키느냐에 따라 오묘한 색채의 무늬가 자기에 침착된다. 이를 김 도예가는 ‘도예가의 마술’이라고 표현한다. 흙을 다루는 도예가가 불을 다루는 연금술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덕분에 김시영 도예가는 1999년 최고 장인에게 주어지는 ‘경기으뜸이’로 최초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형화된 도자기에서 벗어나 찌그러지고 녹아버린 듯한 비정형의 자유로운 심상을 담아내고 있다. 그의 도전 뒤에는 도예가의 길을 함께 걷는 두 딸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흑자는 제게 ‘영원’입니다. 나는 영원하지 못하니까 영원할 수 있는 걸 흙에 담으려는 거죠. 누구나 감동할 수 있는작품, 맑은 기운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유한하다는 걸 알기에 영원을 꿈꾸는 도예가.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 더 무한한 감동이 전해져 온다.
도자는 화염의 예술이다.
김시영은 화염의 예술에 극치인 흑자 도자만을 30여년 고집해 작업하고 있다. 그 작품성을 널리 인정받아 국가에서 수여하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수여하는 문화훈장 화관을 서훈하였고, 그의 52cm 대형 흑자 달항아리는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움(이하 V&A)에도 소장되었다.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인 정양모는 ‘수도승처럼 작업하는 작가’라 김시영을 일컬었다. 김시영은 1980년대 말-2010년대 초반까지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흑자 다완과 흑자 달항아리를 작업하면서 그만의 독창정인 ‘김시영 구조색’을 탐구한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흑자 회화와 조각으로 감상자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흙의 물성이 가마 속의 다양한 불을 만나 물성이 변화하며 형과 색이 사라졌다 생겨남을 반복하는 요변현상을 보며, 작품의 탄생 과정이 유영하는 인간의 삶과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의 둥글고 찬란한 색채들의 추상 회화와 조각은 2022년에 이르러 점점 인간의 형태를 띠게 된다. 그의 작업 방향은 인간 삶의 무한함 그 속의 황홀과 비극, 숙명들과 유영을 하는 아름다운 현재를 조각해나가고 있다.
“가마 속의 불은 끝을 알 수 없으며, 그 자유로움 안에서 흑자의 숭고함을 발견한다.”
김시영명사님과 함께하는 Q&A
흙보다 불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흑자에 적합한 불을 찾으셨나요?
흑자를 재현하면서 불 조절이 가장 어려웠습니다.검은색이 과연 어떻게 나오나. 품고 있는 본연의 색을 들여다보려면 불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연구하기 위해 이틀에 한 번씩 가마에 불을 지폈어요.
1년이면 200일가량 불을 땠으니까 10년간 2천 번도 넘게 가마에 불을 지핀 거죠. 밤새 가마를 지키면서 비몽사몽 한 상태로도 불을 땠죠. 하지만 멈추지 않고 몇 도일 때 몇 시간 불을 때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조금씩 알겠더군요. 보통 청자는 1,250~60℃, 백자 1,270~80℃에서 굽는데, 흑자는 1,300℃ 이상에서 구워요. 간혹은 1,500℃에서 살아남은 작품도 있습니다. 그런 시도도 많이 해요. 더 가혹한 조건을 견뎌낸 작품을 기대하는 거죠. 불을 깨우쳤다고 하지만 아직도 완성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잘하다가도 한 달 쉬면 다시 10년 전 20년 전으로 돌아가거든요. 그러니 멈출 수 없죠.
흑자 복원에서 더 나아가 정형화되지 않은 작품세계로 발전하고 계신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예전엔 흑자 복원, 재현 위주로 작업했습니다. 2010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인전을 할 때, 달항아리 위아래를 접합해서 불속에서 흐드러지면 새로운 균형이 잡히고 형태가 만들어지는 걸 보면서 기존 작업이 답답하더라고요.
일반적인 도예가들의 작업 방식이 아니라 마치 달나라에서 무중력 상태에서 성형을 하거나 흙에 밀가루를 섞어서 빵처럼 만드는 것처럼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 보니 재미를 느껴서 계속하게 되더군요. 그때부터 자유로운 형태를 찾게 되었고 3년 전부터는 좀 더 본격적으로 추상 조형작품 위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찻잔도 만들고 있고 예전의 작품도 중요하지만, 보다 자유로운 작품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미래의 흑자는 정형적인 세계를 떠나서 좀 더 새로운 것이 창출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하고, 고객들도 그런 작품을 더 좋게 봐주시는 경향도 있고요. 그래서 이제 도자기 작가라기보다는 불과 흙의 작가로 불리고 싶습니다.
흑자가 문화 관광 콘텐츠로서 가지는 의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흑자에 관심을 갖고 직접 보기 위해 찾아오는 것부터가 일단 문화 관광 콘텐츠로서 가능성이 있다고볼 수 있죠.
그리고 손님들이 오셔서 찻잔에 차를 마시면서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자체가 문화 관광 체험이 되고 있고요.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와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예술에 대해 감명 깊은 인상을 받고 가십니다. 지난 평창올림픽 때는 일본의 10대 관광사 대표들이 다녀갔는데, 그중 3명이나 노고갤러리가 최고였다고 하더랍니다. 그만큼 한국적인 정서 속에서 작가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1999년에 경기도에서 ‘경기 으뜸이’를 선정할 때 도자기 분야에서 처음으로 제가 선정되었고, 또 흑자가 홍천의 대표 예술품으로 선정되어 지역을 알리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진정한 예술품으로 전 세계에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더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PROGRAMS
# 김시영 아뜰리에 관람
김시영 아뜰리에는 김시영 도예가와 제자이자 두 딸인 자인, 경인 작가가 흑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나지막한 오르막길을 따라 전시실과 작업실이 꾸며져 있으며, 자연 공간 곳곳에 도자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도자기 가마와 국내 유일한 흑자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10:30~18:30 *월요일 휴관
# 다완 체험
다실에서 김시영 도예가가 빚은 찻잔에 전통차를 우려 마시는 체험.
큰 작품은 눈으로만 감상해야 하지만,
찻잔은 작지만 작가의 정신과 작품에 대한 열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된다.
◊ 마스터피스 체험(갤러리 관람 및 다완 체험 포함) 10만 원(1인)
# 프리미엄 체험
예술과 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리미엄 체험도 마련되어 있다.
김시영 도예가와 함께 직접 산에 가서 흙을 채취하고, 채취한 흙으로 유약을 만들고 물레 체험도 한다. 이후 김시영 도예가가 만든 도자기 식기를 이용해 식사하고 갤러리 관람과 다완 체험까지 하면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프리미엄 패밀리 체험은 아이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한 약식 가족형 프로그램이다.
◊ 프리미엄 체험 100만 원(1인) / 가족 프리미엄 체험 4인 기준 100만 원
명사 추천 홍천 관광지
힐리언스 선마을
분주한 일상을 벗어나 조용하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힐리언스 선마을. 힐링(Healing)과 사이언스(Science)의 합성어인 ‘힐리언스(Healience)’ 선마을은 자연 속에서 휴식과 치유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웰에이징 공간이다. 웰에이징을 위한 식습관, 운동습관, 마음습관, 생활리듬 습관을 체득하도록 돕는다.
장소 강원도 홍천군 서면 종자산길 122 | 전화 02-1588-9983 | | http://www.healience.co.kr
수타사
서기 708년 신라 성덕왕 때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 중심 법당인 대적광전은 정면 3칸과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조선 후기 목조건물의 건축미가 돋보이며, 보물 제745호 월인석보를 비롯해 동종, 3층 석탑 등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땅에 꽃은 노스님의 지팡이가 자라났다는 수령 5백 년의 주목(朱木)은 신비로움을 더한다.
장소 강원 홍천군 영귀미면 수타사로 473 | 전화 033-436-6611 | http://www.sutasa.org
도자기 체험 하는거 너무너무 좋은거같습니다 전통방식으로 하셔서 더욱더 멋지시고요
전통방식을 그대로 지키고 계신 것 같아서 더욱 멋진 것 같아요. 저도 가서 체험을 해보고 싶네요.
달나라에서 무중력 상태에서 작업하는 느낌! 도예가님의 우주가 이 '흑자' 안에 들어가 있네요~^^
자연과 인간의 만남! 자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최고의 작품이 탄생하기도 하고, 그저 한줌의 흙으로 존재하기도 하겠네요. 자연을 최고로 빚어내시는 능력은,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라고보면, 사람의 능력도 대단한것 같아요. 영원을 꿈꾼다면, 영원을 소유하는것도ᆢ
영원할 수 있는 것을 흙에 담는 다는 표현이 너무 멋지네요.. 기억에서 잊혀져있던 흑자를 기억할 수 있게 연구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불이 만든 예술품이네요. 불 결이 만든 흔적에 어느 것보다 견고함과 단단함이 있을 것 같습니다.
1500도를 견뎌낸 도자기! 더 가혹한 환경을 견뎌냈기때문에 더 아름다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흙과 불의 만남이 어느시점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다양한 색을 창출해내고 있나보네요. 작가님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
우리 삶은 몇도를 견뎌야 할까요? ^^ 인간의 몸은 36.5도를 기준으로 조금만 차이나도 견뎌내기 힘든데 작가님의 1,000도 이상을 다루시는 열감은 어떤 느낌일지..
흑자를 바라볼때 느껴지는 신비로운 색이 검정안에 여러 색이 담겨있어서 그런거였군요! 그 신비한 빛을 구현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매번 구울때마다 다른 느낌의 흑자가 탄생한다는 것을 알고 나니 흑자의 매력에 대해 더 푹 빠지게 됩니다~